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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사람 얼
요는 천하를 얻어 임금이 된 다음, 세상에서 자기의 다스림을 어찌 아나
알아보려고, 한번은 시골로 나갔다. 밭에서 노래를 부르며 일하는
농사꾼을 보고 슬쩍,
"당신은 우리 나라 임금을 아시오?"
했다. 농부가 그 말을 듣고 거들떠보지도 않고 흙덩이만 까면서 하는 말이,
"아 내가 해 뜨면 나오고, 해 지면 들어가고, 내 손으로 우물 파 물
마시고 밭 갈아 먹고사는데, 임금이고 뭐고 상관이 뭐야?"
했다. 요는 속으로 '내가 나 있는 줄 모르리만큼 했으니, 어지간히
하기는 했구나!' 하면서도, 아무래도 마음이 시원치가 못했다.
어디까지나 백성을 위하자는 마음이요, 가르치자는 생각이므로 호강이나
세력을 부리자는 뜻은 없어, 집을 지어도 백성보다 나은 것이 겨우
흙으로 싼 새 층대에서 더한 것이 없음을 자기도 스스로 알지만 그래도
어쩐지 마음의 한구석에 불안이 있었다. 그래 사람을 영천 냇가에 보내어
거기서 농사를 짓고 있는, 전에 도를 같이 닦던 시절의 친구인 소부
허유에게 가서, 나와서 벼슬을 하고 같이 일을 하자고 권했다. 그랬더니
소부가 그 말을 듣고는,
"에이, 더러운 소리를 들었군."
하고, 영천수 흐르는 물에 귀를 씻었다. 허유가 마침 송아지에게 물을
먹이려다가 그 모양을 보고,
"야, 그 물 더러워졌다. 그것 먹이면 내 송아지 더러워진다."
하고, 끌고 위로 올라갔다.
장자가 초나라엘 갔다가 어느 냇가에서 낚시질을 했더니, 그 나라의
임금이 듣고 신하를 보내어 예물을 잔뜩 가지고 와서 하는 말이,
"우리 나라 임금이 선생님의 어지신 소문을 듣고 꼭 오시어 우리 나라를
위해 일을 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했다. 장자가 그 이야기를 듣고,
"이애, 여기 제사 돼지가 있다. 그놈 살았을 때 진창 속에 뒹굴고
있지만, 제삿날이 오면 비단으로 입히고 정한 자리를 깔고 도마 위에
눕히고, 칼을 들어 잡는다. 그때 돼지가 되어 생각한다면, 그렇게 죽는
것이 좋겠느냐? 진창 속에서나마 살고 싶겠느냐? 또 너희 나라 사당 안에
거북 껍질 있지? 그 놈은 살았을 때 바닷가 감탕 속에 꼬리를 끌고 놀던
것인데, 한번 잡힌 즉 죽어 그 껍질을 미래를 점치는 신령이라 하여
비단보로 싸서 장안에 간직해 두게 되니, 거북이 되어 생각한다면 죽어서
그 영광을 받고 싶겠느냐? 감탕 속에 꼬리를 끌면서라도 살고 싶겠느냐?"
했다. 왔던 사신의 대답이,
"그야 물론, 진창 감탕 속에서 뒹굴고 꼬리를 끌면서라도 살고 싶겠지요."
"그렇다면, 가서 너희 임금보고 나도 감탕 속에 꼬리를 치고 싶다고
해라. 천하니, 임금 질이니, 그게 다 뭐라더냐?"
하고, 장자는 물위에 낚시를 휙 던졌다.
마케도니아 한 절반 야만의 자식인 알렉산더는, 천하를 정복할 적에
당시 문화의 동산인 헬라를 말발굽 밑에 두루 짓밟았다. 오는 놈마다
말 앞에 무릎을 꿇었다. 들려 오는 소문에 디오게네스란 유명한 어진
이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젊은 아이의 영웅심, 자만심에 으레 제가
나를 보러 오겠거니 했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아니 왔다. 약도 올랐고
호기심도 일어나고 하여 그는 부하를 데리고 디오게네스 있는 곳을
찾아갔다. 가보니 늙은이 하나가 몸에는 누더기를 입고, 머리는 언제
빗질을 했는지 메두사의 머리의 뱀처럼 흐트러졌는데, 바야흐로 나무통
옆에 앉아 볕을 쬐고 있었다. 이 나무통은 그의 소유의 전부인데, 낮에는
어디나 가고 싶은 데로 그것을 굴려 가지고 가고, 밤에는 그 안에
들어가자는 것이다. 디오게네스는 누가 왔거나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젊은 영웅은 화가 났다.
"너 알렉산더를 모르나?"
제 이름만 들으면 나는 새도 떨어지고, 울던 아기도 그치는 줄만 아는
알렉산더는 마음속에 '저놈의 영감쟁이가 몰라 그렇지, 제가 정말
나인 줄 알면야 질 겁을 해 벌떡 일어설 테지' 하는 기대를 가지고 한
소리였다. 그러나 디오게네스는 놀라지도 코를 찡긋도 않고 기웃해
알렉산더를 물끄러미 보고하는 말이,
"너 디오게네스를 모르나?"
그리고는, 목구멍에 침이 타 마르고 있는 젊은 정복자를 보고,
"비켜, 해 드는 데 그림자 져." 했다.
후한의 광무제가 한개 선비로서 일어나 어지러워 가던 한나라를 다시
일으켰다. 전쟁이 다 끝나고 천하가 완전히 제 손에 들어온 줄을 알게
된 다음, 마음에 좀 불안을 느꼈다. 이제 천하에 나를 칭찬 아니할 놈이
없고, 내게 복종 아니할 놈이 없건만, 단 하나 한 사내만이 마음에
걸린다. 그것은 엄자릉이다. 그는 광무제의 동창 벗이었다. 한 가지
성현의 도를 닦는 시절에 서로 마음을 알아주는 벗으로 허락을 했었다.
높은 이상과 두터운 덕에 있어 그가 자기보다 한 걸음 내켜 디딘 줄을
아는 광무제는, 처음의 선비의 뜻을 버리고 권세의 길을 탐해 천자가
되기는 했지만 자릉이 자기를 속으로 인정해 주지 않을 줄을 알았다.
그 생각을 하면, 앞에서 네 발로 기며 아첨하는 소위 만조 백관이란
것들이 보기도 싫다. 그래, 사람을 부춘산에 보내 냇가에 낚시질하는
엄자릉을 데려 오라 했다. 자릉이 따라왔다.
대신이요, 무어요 하는 물건들이 뜰 아래 두 줄로 벌려 서서 감히
우러러도 못 보는 데를 자릉이 성큼성큼 걸어 광무 앉은 곳으로 쑥
올라갔다.
"아, 문숙이 이게 얼마만 인가?"
그 동안에 몇 해의 전쟁이요, 나라요, 정치요, 천자요, 그런 것은
당초에 코끝에 거는 것 같지도 않았다. 신하들은 어쩔 줄을 몰랐다.
광무도 도량이 넓다고는 하나, 짐승처럼 부려먹는 신하들 앞에서
제 위에 또 권위가 있다는 것을 허락해 보여주는 것이 그리 기분
좋은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자릉을 신하 대접을 했다가는 당장에
무슨 벼락이 떨어질지 모르고, 물론 자릉이 그럴 리도 없겠지만 광무의
마음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스스로 무엇인지 모르는 기에 눌림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 신하들보고는,
"너희들은 물러가라. 내 친구를 오래간만에 만나 서로 정을 좀 풀련다."
했다. 밤새 이야기를 하다 잤다. 천문을 보는 신하가 허둥지둥 들어와,
"큰일났습니다. 객성이 태백을 범했으니, 무슨 일이 있사옵는지
모르겠습니다." 했다.
태백이란 지금 말로 금성인데, 옛 사람 생각에 그것은 임금을 표시한다.
객성이란 다른 별이란 말이다. 임금은 절대 신성하여 범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엄자릉이 자면서 광무의 배 위에 다리를
턱 올려놓고 잣더라는 것이다. 그래, 후의 시인이 자릉의 그 기상을
대신 말하여,
일만 일에 생각 없고, 다만 하나 낚싯대다
삼공 벼슬 준다 한들 이 강산을 놓을쏘냐
평생에 잘못 봤던 유문숙이 너 때문에
쓸데없는 이름 날려 온 세상에 퍼졌구나
라고 했다.
이것은 다 호랑이 담배 먹던 시대가 그리워서 하는 이야기들이다.
호랑이 담배 먹는 이야기를 왜 이 우주 시대라는 지금도 하며, 하면
왜 루니크 제2호가 달에 갔다는 소리를 듣는 것보다 더 상쾌함을 느낄까?
그것이 역사적으로 있었더냐 없었더냐 가 문제 아니다. 없다면 없을수록
없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자꾸 전해 오게 되는데, 그 사실을 뛰어넘은
진실성이 있다. 사실, 사실은 사실의 전부가 아니다. 소위 사실이란 것은
현실을 가지고 말하는 것인데, 현실은 결코 참이 아니다. 현실이라
하지만 '현'이야말로 '실'은 아니다. 씨는 언제나 뵈지 않는 속에 있다.
씨가 피어 나온 것이 잎이요 꽃이지만 잎과 꽃이 그 씨가 품었던 전부는
아니다. 씨가 품은 것은 영원이요 무한이다. 그러므로, 꽃마다 잎마다
열매를 내기 위하여서는 떨어져야 하고(현실은 없어지고), 그 씨는
또 더 많은, 더 새로운 씨를 위해 땅 속에 들어가야 한다. 참에서 믿음이
나오지만 '있는' 것이 참도 아니오, '있던' 것이 참도 아니다. '있을' 것,
'있어야 할' 것이 정말 참이다. '시'(시작할 시)가 '종'(마칠 종)을 낳는
것이 아니라, '종'이 '시'를 낳는다. 신화는 있던 일이 아니오, 신화는
이상이다. 이상이므로 처음부터 있었을 것이다. 알파 안에 오메가가
있고, 오메가 안에 알파가 있다. 이 문명이란 것은 알파도 오메가도 잃고
중간이다. 중간은 죽은 거요, 거짓이다. 이 사실에 붙는 문명은 죽은
문명이요, 거짓 문명이다.
호랑이는 담배를 먹었을 것이요, 사람과 서로 맞술을 마시고야 말
것이요, 지금도 어디서 마시고 있을 것이다. 호랑이가 담배를 먹었다면,
사람은 선악과를 먹었다. 먹고야 말 것이다. 선악과 먹던 에덴 동산
이야기를 그리워하는 것은 사람이 선과 악을 참 아는 지혜를 얻고야
말 것을 뜻한다.
"사람의 딸들이 하느님의 아들들과 결혼을 했을 것이요(창세기 6:4),
또 낳는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모든 신화는 요컨대 하나다. 사람과
하느님과 만물이 서로 통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근본이요, 또 구경
이상이다. 그 신화가 타락하여 전설이 되고, 전설이 타락해 사화가 되고
사화가 타락해 사건이 된다. 사건이 나면 죽는다. 문명은 사건의
공동묘지 아닌가?
그러므로, 소부 허유가 사실로 있었거나 없었거나, 자릉이 정말 광무의
배때기를 눌렀거나, 디오게네스가 과연 알렉산더의 눈깔을 빨았거나
말았거나,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것과는 별 문제로 이 이야기들은
참이다. 따지고 들어가면 다른 것이 아니오, 두 편이 있단 말이다.
요, 초왕, 알렉산더, 한광무등으로 대표되는 소위 문명인과 소부, 허유,
장자, 디오게네스, 임자릉등으로 대표되는 '들사람'과 그리고 이 세상이
보기에는 문명인의 세상 같지만, 사실은 들사람이 있으므로 되어 간다는
말이다. 그것을 주장한 것이 이들 신화, 전설이 끊이지 않고 전해
내려오는 이유이다.
중국 민족같이 실제적인 민족은 없다. 거기서 난 성인 공자는 주로
집과 나라와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가 하는 실지 도덕의
가르침이었지, 우주의 근본이나 생명의 신비 같은 것을 그리 말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 가르침이 표준이 되어 임금을 하늘 아들이라
높였는데, 그 중국 역사에 어찌하여 내리내리 잊지 않고 세상을 초탈하는
인물을 늘 그 위에 앉히는 사상이 있을까? 또 헬라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폴리스란 말이 정치를 뜻하듯이 그들은 정치적인 민족이요, 또 과학
발달이 그들에게서 나왔는데, 어찌하여 디오게네스 같은 인물을
알렉산더보다 높이는 사상이 있을까? 그렇게 보면, 하필 중국이나 헬라만
아니라, 어떤 민족 어떤 나라의 역사에도 이 두 계급의 대립이 있고,
현실에 있어서는 하나 틀림없이 다 임금을 높이고 신이라고까지 하면서도
그 뒷면의 정신의 세계에선 늘 그 위에 관 없는 왕을, 왕위의 왕을 앉혀
놓는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양치는 소년 다윗은 골리앗을 조약돌로 때려
눕혔고, 그 다윗은 선지자 사무엘을 어린애처럼 가져다 왕위에 놓았으며,
인도에서는 임금이 왕의 자리를 버리고 출가를 하여 거지같은 고행자
앞에 겸손한 제자가 되는 일이 수두룩했다. 맹자는 임금이 불러도,
"저는 벼슬 한 가지 높지만, 나는 나이로도 높고 덕으로도 높으니,
제가 어찌 나를 불러?"
하고, 아니 갔고, 천작 인작을 말했다. 뼈다귀가 빠질 대로 다 빠지고
살이 썩을 대로 다 썩은 우리 나라 이씨네 5백 년에 있어서도 그래도
무슨 기백이 남은 것이 있다면, 상투 밑에서 고린내는 났을망정 한줌
되는 산림학자에 있지 않았나? 정몽주를 때려 죽였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선죽교에 피가 흐른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성계, 이방원을 만고의
죄인으로 규정짓는 민중의 판단이지, 왕위에 또 왕이 있단 말이지 무언가?
야차 같은 수양 대군으로도 미친 녀석 같은 김시습을 어떻게나 모셔
보려 애를 쓴 것은 무엇인가? 칼보다도 더 무서운 칼이 있고, 곤룡포보다
더 아름다운 옷이 있단 말이지.
개성에 가면 덕물산이란 조그만 산이 있어, 거기는 무당만 몇십 호가
굿을 해 먹고 살아가는데, 그거는 뭐냐 하면, 최영 장군의 영을 모신
곳이다. 지금은 물론 미신이지만, 당초의 그 유래를 찾으면 태종 때에
비가 아니 와서 사방 기우제를 지내다 못해 누구 말이 최 장군의 영이
노해 그런 다하여 그 묘에 제사를 지냈더니 곧 큰비가 와서 그때부터
그리 됐다는 것이다. 이태조와 최 장군이 원수로 대립되던 이상 태종의
마음으로 그 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을 허하고 싶지 않았겠지만, 민중의
생명이 관계되는데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 뭐냐? 목은 잘랐지만,
도리어 졌단 말이 아닌가? 민중은 최 장군을 더 존경한다는 말이 아닌가?
과학적으로 보아서 비온 것이 우연이거나 영검이거나 그것은 별문제로
민중의 마음이 최 장군을 위해 절대 받든 것만은 사실이 아닌가? 살고
죽는 화복의 마지막 결정권은 민중에 있다. 또, 김시습이 미친 모양을
하고 다니며, 길가에서 오줌을 쌌다. 그것이 누구냐? 그가 길을 가다가는
주저앉아,
"이 백성들이 무슨 죄가 있소?"
하고, 통곡하던 바로 민중 그 자신이 아닌가? 오줌을 쌌다니, 어디다 싼
것인가? 세조의 정치에 대해, 바로 세조의 얼굴에 대고 싼 것이지 뭐냐?
칼을 뽑아 물을 잘라도 물은 오히려 흐른다고, 사람들의 모가지는 자를
수 있어도 민중의 오줌인 신화, 전설 여론은 못 자를 것이다. 봐라! 두고
봐라! 한이 뼈에 사무쳤다니, 원수라도 갚을까 봐 겁나 그러나? 비겁하다!
그게 아니다. 미친 제 오줌을 싸는 것은 원수 갚을 마음이 없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비겁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에서 싸는 오줌이 안이야. 오줌
쌈을 받는 놈보다는 스스로 좀 넓고 큰 것이 있기 때문에 하는 거야.
소원이야 예수처럼 죽으면서도 죽이는 놈 위해 복 빌고 싶은 마음이지만,
그만한 일의 실력은 없으니 오줌이라도 싸는 것이다. 매월당 오줌 한번
구경하려나?
서거정이 그와 친구였다. 찾아온 김시습을 보고, 그림 한 폭을 내놓으며,
거기다 뭐라 글을 하나 써 달라 했다. 그림은 강태공이 문왕을 만나기
전위천에서 낚시질하는 것을 그린 것이었다. 시습은 붓을 들어 곧 단숨에
내리 갈겼다.
비바람 들이치는 위천 물가 낚싯대에
저 고기 새 너를 배워 세상 일 잊었더니
어쩌다 늘그막엔 난다 긴다 장수되어
쓸데없이 백이 숙제 굶어 죽게 했단 말가
거정이 이것을 보더니, "이거 나를 죄 주는 소리로구나." 했다. 옳은
말이다. 본래 벼슬이라도 해 먹는 자들에게는 맞지도 않는 그림이었다.
"내가 진리의 왕이다."라고는 못할망정, 매월당이 쌌던 세종로에 대고
대낮에 오줌을 한번 갈기고 싶은 일이다. 그만한 '들사람 얼'이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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